
이스라엘의 극우 성향 장관인 베잘렐 스모트리히는 이번 공세가 단순히 헤즈볼라를 격퇴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레바논과 새로운 국경선을 리타니강으로 설정하여 영토 구도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리타니의 비명: 다시 그려지는 지도와 부서진 올리브 가지
2026년 3월의 봄은 중동에 잔인한 계절로 기억될 성싶다. 대지를 적셔야 할 단비 대신 포성이 하늘을 메우고, 생명의 젖줄이어야 할 강줄기에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3월 24일, 이스라엘 군(IDF)이 레바논 남부 리타니 강(Litani River)의 주요 교차 지점을 타격했다는 소식은 단순한 전황 보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지난 수십 년간 국제 사회가 약속했던 '선'들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이다. 우리는 지금 한 국가의 주권이 지형지물 속으로 매몰되고, 지도가 총칼 끝에서 다시 그려지는 거대한 지정학적 지진의 한복판에 서 있다.
지도의 반란: 블루 라인을 지우는 리타니 선언
오랜 시간 레바논 남부와 이스라엘 북부를 가르던 기준은 유엔이 설정한 '블루 라인(Blue Line)'이었다. 비록 불안정한 평화였을지언정, 그것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최소한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세인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이 약속의 판을 완전히 뒤엎는다. 그는 리타니 강을 이스라엘의 '실질적 영토 경계'로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존의 국경 개념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리타니 강은 레바논 국가와 우리 사이의 새로운 국경이 되어야 한다."
이 한 문장은 국제법적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강을 경계로 삼겠다는 것은 단순한 방어선의 구축이 아니다. 리타니 강 이남의 레바논 영토를 이스라엘의 통제권 아래 두겠다는, 이른바 '영토적 재편'을 의미한다. 이는 타국의 주권을 군사적 편의에 따라 재단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며, 중동의 지도를 19세기 식민주의 시대의 그것처럼 힘의 논리로 다시 그리겠다는 야심의 발로다.
'근본적 변화'라는 이름의 점령 시나리오
스모트리히 장관이 강조하는 핵심 키워드는 '근본적 변화'다. 그는 이번 군사 작전의 목표가 단순히 헤즈볼라라는 적대 세력을 밀어내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못 박는다. 과거 1978년이나 2006년의 전쟁이 일시적인 승리 후 철수하는 패턴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지형 자체를 안보 시스템의 일부로 '고착화'하겠다는 의지다.
이 근본적 변화의 실체는 리타니 강 이남 지역의 영구적인 완충지대화, 혹은 실질적인 병합에 가깝다. 군사적 승리를 영토적 점유로 변환하여, 레바논 남부의 지리적 구조를 이스라엘의 방어막으로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레바논이라는 국가의 허리를 자르는 행위이자,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던 민초들의 삶의 터전을 군사 기지화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복제되는 비극: 가자의 모델이 레바논으로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 전략이 이미 다른 지역에서 검증(?)된 통제 모델의 복사판이라는 사실이다. 스모트리히가 구상하는 레바논 남부의 미래는 가자 지구의 '옐로우 라인'과 시리아 '헤르몬산'의 장벽 모델을 혼합한 형태다.
가자의 옐로우 라인은 거주가 엄격히 금지된 '죽음의 구역'이다. 상시적인 감시와 즉각적인 타격이 이루어지는 이 잔혹한 통제선을 리타니 강 유역에 이식하겠다는 것은, 레바논 남부를 거대한 야외 감옥이나 무인 지대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또한 시리아 접경지에서 보여준 고지 점령과 물리적 장벽의 성공 사례를 리타니 강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레바논 남부의 가자화'를 가속화한다. 물리적 장벽으로 적대 세력을 분리하는 것을 넘어, 아예 영토의 기능을 상실하게 만드는 이 '난도질 전략'은 지역 전체를 끝없는 증오의 늪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부서진 다리, 끊어진 삶의 맥락
이스라엘 군이 파괴한 리타니 강의 교량들은 단순한 보급로가 아니다. 그것은 마을과 마을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던 삶의 가교였다. 군사적 목적이라는 명분 아래 파괴된 그 다리 위에는 어제까지만 해도 채소를 싣고 시장으로 향하던 농부의 트럭이 있었고, 학교를 오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었다.
지도가 다시 그려질 때, 그 지도 위의 점으로 표시된 인간의 삶은 지우개질 한 번에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가 된다. 국경선이 북상할 때마다 누군가는 대대로 지켜온 올리브 나무 숲을 떠나야 하고, 누군가는 조상의 묘비를 뒤로한 채 피난길에 올라야 한다. 이스라엘이 긋고 있는 새로운 선은 안전을 보장하는 방벽이 아니라, 오히려 중동 전체를 타오르게 할 거대한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붉게 물든 강물 앞에서 묻다
깊은 밤, 지도를 펼쳐 놓고 리타니 강줄기를 손가락으로 따라가 본다. 누군가에게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새로운 국경선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그곳이 수천 년간 흐르며 문명을 잉태한 어머니의 젖줄로 보인다. 전쟁의 논리는 차갑고 명쾌하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 저 강을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논리는 따뜻하고 아프다. "저 강물에 내 아이의 얼굴을 씻겨주고 싶다."
우리는 언제쯤 영토의 크기보다 영혼의 깊이를 먼저 살피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강을 사이에 두고 총을 겨누는 이들도, 결국은 같은 태양 아래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는 형제들이 아닌가. 권력자들이 잉크로 긋는 국경선은 시간이 흐르면 바래지겠지만, 그 선 때문에 흘린 무고한 이들의 눈물은 땅속 깊이 박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흉터가 된다.
리타니 강물은 지금도 묵묵히 흐른다. 인간이 멋대로 정한 국경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저 낮은 곳을 향해 흐를 뿐이다. 평화는 강제로 긋는 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강물을 가로막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쯤 깨닫게 될까.













